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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70) 육아를 통해 더욱 겸손해진다.

화장실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그림그리는 중

 
 

한없이 낮은 자세로

최근 감정컨트롤이 되지 않고 짜증과 화가 쉽게 올라왔다.
아이가 조금만 밍기적대거나 말을 듣지 않고 사고를 치면
이 작은 아이를 이기려는 마음에 큰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열에 한 번은 참지를 못하고, 눈을 부릅뜨고 아이에게 큰소리를 쳤다.
깜짝 놀라 하던 행동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던 아이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다행히(?) 사고를 마저 치며 아무렇지 않아하지만 
손쉽게 말을 듣게 하려고 큰소리 친 내 행동이 내내 부끄럽고 미안하다.
 
아이에게 화가 나는 순간은 종종 있다.
그런데 그 때 아이가 얼마나 통제밖의 행동의 했냐보다는
내 마음과 신체의 상태가 어떠했냐가 더 큰 변수이다.
 
근래는 피로누적+좁아진 마음의 콤보로 아이를 보는 나의 품이 넉넉하지 못했다.
 
어린이집 고민, 둘째계획, 복직, 퇴사, 새로운 진로..
여러가지를 고민하다보니 육아하던 엄마의 마음에 조급함이 고개를 쳐들었나보다.
가장 약하고 나를 미워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화풀이를 한 건 아닐까..
이 순간을 사무치게 후회할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마음챙김을 노력했다.

육아는 정말 힘이 든다.
아이만 있고 나는 없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연약해지는 이 순간이 내적성장의 기회이다.
다른 상황에서는 힘들고 약해질 때 남탓을 하며 회피하고 
상황을 외면하거나 다른 방어기제들을 쓸 수 있었다.
나만 안다치면 되니까..
그치만 육아를 하니 진퇴양난이다.
내가 성장하지 않으면 아이가 다친다.
지금 회피해도 상황은 반복되며 결국 아이가 상처받는다.
그렇다면 내가 최대한 빨리 변하는 수밖에..
부모의 책임이 이런 것이 아닐까..
 
지금은 아이가 내 눈치를 보며 행동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치만 조금만 크면 내 눈치를 보겠지..
그러면 나는 그 틈을 놓치지않고 눈치를 줄 것이다.
그러는 편이 내가 훨씬 편할테니까.
지금은 화를 내고 미안해하지만 
그 때는 화를 무기 삼아 아이를 조종할지도 모른다.
몇번은 후회하고 반성하겠지만 금새 습관이 될 것이다.
 
이것이 평생을 걸쳐 형성된 나의 자동반응 중 하나이다.
이를 인지하고 수정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충분히 변화가 가능하다도 믿는다:-)
 
자동반응은 DNA와 같다.
대대로 물려받은 행동패턴일 뿐이다.
부모를 원망하거나 스스로를 비난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알아차리고 내 대에서 끊어내자는 다짐을 할 뿐..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조금 더 오래 살았다고 내 방식을 강요하는 내가 얼마나 우스운지 모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 마태복음 19:14 -

육아를 하며, 아이들에게 얼마나 배울 것이 많은지 느낀다.
천국을 매일 곁에서 마주하는 것은 신이 주신 축복이다.
묵상하고 감탄하고 경험하는 이 순간을 감사한다.